토익 900점인데 영어 회의에서 말이 안 나오는 이유
점수가 높은 사람이 회의에서 조용한 까닭
영어 회의에서 끝까지 조용한 사람이 사실은 참석자 가운데 영어 점수가 제일 높은 사람인 경우가 꽤 많다. 토익 900점대에 미국 변호사 자격증까지 있는 학생들이 회의 얘기만 나오면 유독 힘들어했다. 영어 회의에서 말이 안 나오는 사람들을 보면 단어가 부족한 경우는 드물고, 대부분은 틀린 문장이 나갈까 봐 망설이다가 말할 때를 놓친다.
점수가 높은 사람이 왜 회의에서 더 힘들어할까
시험에는 정답이 있고, 900점은 정답을 오래 맞혀 온 사람이 받는 점수다. 회사 사람들도 다 안다. 그러니 회의 중에 문법이 꼬인 문장이 그냥 실수로 넘어가지 않는다. "900점이 저 정도야?" 하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아서 말이 안 나온다. 가만히 있으면 적어도 점수가 깎일 일은 없다.
점수가 높은 사람은 남의 실수에도 귀가 밝다. 동료가 관사를 빼먹는 것까지 다 들리니, 내 문장도 다들 그렇게 듣고 있으려니 싶다. 막상 호주 사람들은 회의에서 남의 문법을 거의 신경 쓰지 않는다. 이 사람이 뭘 하자는 건지, 그게 우리 일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듣는다.
회의는 시험이 아니다. 호주에서 20년 넘게 회의에 들어가 보니, 주도권은 늘 말을 먼저 꺼낸 사람이 쥐었다. 조금 엉성해도 먼저 안을 내놓은 사람이 회의를 끌고 가고, 머릿속으로 문장만 다듬던 사람은 따라갈 수밖에 없다. 늦게 움직이면 결국 안 하느니만 못하다.
첫마디를 미리 정해 두면
나는 학생들에게 첫마디를 미리 정해 두라고 한다. 호주 사람들은 생각이 덜 정리됐을 때 이렇게 말을 연다.
I'm thinking out loud here, but…
(정리된 생각은 아닌데요,)
이렇게 시작하면 뒤에 오는 문장이 조금 서툴러도 듣는 사람은 생각하는 중이려니 하고 넘어간다. (정작 이 말을 쓰는 호주 사람들은 생각이 거의 정리돼 있을 때가 많다.)
연습은 회의 전날 하면 된다. 안건을 골라 내 생각을 주어와 동사만으로 써 둔다. "I think we need two more weeks."(2주는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.) 정도면 충분하다. 다음 날 회의에서는 위의 첫마디 뒤에 써 둔 문장을 붙여 말하고, 다듬는 건 회의가 끝난 뒤에 해도 늦지 않다.
점수는 남이 매겨 준다. 회의 영어는 틀려 봐야 는다.
KJ쌤. 1998년에 호주로 건너왔고, 2004년부터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영어로 일했습니다. 지금도 직원을 뽑는 면접관이고, 1:1로 2,000명 넘게 가르쳤습니다.
초안 정리에 AI를 쓰고, 내용과 판단은 KJ쌤이 씁니다.
KJ쌤의 편지
한 달에 한 번, 수업에서 다 못 한 영어 얘기를 메일로 보내요. 영어 때문에 속상했던 일을 답장으로 보내 주시면, 이름은 빼고 다음 편지에 제 생각을 적어요.
첫 편지는 11월 10일 아침 8:00(한국 시간)에 가요. 「소는 cow인데 소고기는 왜 beef일까」
숙제는 없어요. 편지마다 맨 아래에 그만 받기가 있어요.